
왕의 남자는 2005년 영화로 개봉돼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실미도, 태극기에 이어 세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게 됐다. 이 영화는 연극 ‘이’를 각색한 작품으로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역사적으로 동성애 코드가 존재했던 2000년대의 이례적인 영화였기에 이러한 인기는 의외였다. 그렇다고 단순한 게이 영화가 아니라 탄탄한 스토리와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의 열연이 관객들의 영화에 재미와 감동을 더한다. 개봉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다시 봤다는 호평을 받았고, 지금도 1000만 관객을 가장 많이 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요약
당시 남사당 극단은 조선시대 사대부 집에서 연주를 했다. 그중에서도 줄타기의 달인 장생과 여자보다 잘생긴 공길은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양반은 공길의 미모를 보고 그를 정화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한양에서 더 큰 버전을 열고 싶습니다. 한양에 도착한 장생과 공길은 그곳에서 공연하는 광대를 보고 광대극을 하게 된다. 장생과 공길의 솜씨에 감탄한 육갑, 칠득, 팔복 등 다섯 사람은 한양에서 희극을 펼친다. 그러나 내시 김처선은 그녀를 눈치채고 왕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의금부로 데려가 구타한다. 그리고 연산군 앞에서 공연을 하지만 왕 앞에서 긴장하면 모든 광대들이 실수를 하고 왕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다. 그리고 장생은 최선을 다해 연기하지만 분위기는 점점 살벌해지고 왕을 웃게 만들지 못해 모두가 죽을 것 같아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공길은 위트를 보여주며 연기를 이어갔고, 마침내 왕을 웃게 만들었다. 이후 멤버들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궁궐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연산군은 광대 패거리와 사랑에 빠지고 춤에 동참하며 공길에게 점점 끌린다. 좋아하는 녹수보다 공길을 더 좋아하게 된다. 연산군은 공길까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장생은 이를 보고 당황한다. 한편 연산군은 어머니와 관련된 공연을 보다가 미쳐 선왕의 후궁을 찔러 죽였다. 공길은 점점 미쳐가는 연산군의 유일한 안식처다. 또 연산군은 공길에게 4등을 주고 공길은 왕에게 그를 궁에서 내보내달라고 부탁한다. 또한 장녹수는 왕이 사랑하는 공길을 질투해 공길의 옷을 벗기려 한다. 공길은 벼슬을 강요당하고,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장생과도 갈등을 겪는다. 왕이 미쳐 날뛰자 영의정과 좌의정이 공모하고, 사냥을 하던 중 육갑이 대신 공길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장생 일행은 궁궐 밖으로 나오지만 공길을 떠날 수 없어 머뭇거린다. 이때 장녹수는 공길에게 왕을 비방했다고 누명을 씌우고 공길을 원망하지만 장생은 공길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처선은 장생을 풀어주고 장생은 다시 왕비극을 벌여 연산군을 화나게 하고 연산군은 장생의 눈을 쇠로 막는다. 이에 공길은 연산군 앞에서 인형극을 하고 자결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눈이 멀고 고문을 당하던 장생은 풀려나 궁궐에서 줄타기 춤을 춘다. 공길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타령 경기에서 장생이 줄 위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줄타기 반대편에 선다. 그리고 함께 환생해도 광대가 되어 “제대로 놀자”며 줄을 타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반란군은 연산군을 왕 테이크에서 빼앗기 위해 공격을 가하는데, 영화는 끝납니다.
음악 동쪽
영화 못지않게 사람들의 기억에 와 닿았던 영화 OST는 영화 장화홍련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 이병우 감독이 맡았다. 특히 프롤로그 첫 장면에서 한지에 그려진 광대의 이미지는 민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안태진 조감독과 강승용 미술감독이 함께 제작했다.
무대 뒤에서
정말 재미있게 만든 사람들은 실제로 남사당 극단 사람들을 초대해 행복한 사물놀이를 이끌어 나갔다. 또한 줄타기 배경은 배우 감우성이 와이어 없이 줄타기를 열심히 연습했다고 한다. 그리고 줄타기 장면은 실제 줄타기 선수인 권원태 씨가 맡았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장생이 줄에 올라 부채를 던지는 장면은 배우 감우성이 끝까지 고민했던 장면으로 전해진다.


